[조향 노트] by Sutome Apothecary
Notes
Head: Silver fir, pine needle, peppermint
Heart: Hemlock spruce, juniper berry, rosemary, black pepper
Last: Agarwood absolute, sandalwood, nutmeg, pine tar
황제의 나라 고려가 태평성대를 이룬 시절의 어느 겨울, 온 백성이 함께 모두의 안녕을 빌었던 축제의 밤을 상상합니다. 불교 문화가 융성했던 고려에서 팔관회(八關會)는 매년 국가에서 관장하는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였습니다. 어스름이 짙어갈 즈음, 축제가 절정을 향해가고 있음을 알리는 향등(香燈)이 도시를 밝힙니다. 한겨을의 칠흑 같은 밤하늘 아래에서 더욱 영롱한 향등은 아라비아의 상인들이 가지고 온 진귀한 향신료의 냄새와 뒤엉켜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향내를 발산합니다.
용과 호랑이의 탈을 쓴 궁중의 예인들은 밤이 깊도록 춤추고 비파를 연주하며 꿈결 같은 장면을 연출했을 것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재주꾼들도, 거리 곳곳에 마련한 저마다의 무대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겠지요. 도성을 품은 산자락의 소나무 숲은 함박눈이 그리는 적막 속에 고요히 잠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고려 견문록을 남긴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은 이 성대한 축제를 직접 보지 못하고 돌아간 것을 아쉬워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천 년 전의 고려인들이 평생 간직할 순간이 되기를 기원하며 두 눈과 마음에 담았을 매혹적인 풍경을 향으로 그려 보았습니다. 등불 안에서 향나무 열매와 유향이 타는 냄새, 콧등 위에 내려앉는 눈의 알싸한 촉감, 비일상의 경험을 증폭시키는 이국의 향신료 등을 하나의 블렌드로 엮어냈습니다. 청량감있는 페퍼민트와 소나무 잎이 즉각적으로 겨울의 정경을 연상케 하며, 향연의 역사에서 주인공의 자리를 잃어 본 적 없었던 유향과 침향, 백단향이 시공을 초월하는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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